1. 조선후기
조선후기는 1864년 1월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왕이 집권한 1864년 1월부터 1945년 해방까지를 말한다.
흥선대원군은 왕권강화에 힘썼다.
특히 스두 정부의 파괴와 세금 제도의 개정은 대중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을 중건하고 서원을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중부의 기능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경복궁의 중건과 강제노역, 세금, 그리고 무수한 사람들의 당백성으로 인해 막대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국민들은 여전히 비참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정상외교를 거부하는 방침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흥선왕이 몰락하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문을 열었다.
1876년 북한은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나라를 개방하고 미국 및 서방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정부가 추진한 계몽정책과 유지정책운동은 날로 치열해지는 강대국들의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근대문화의 수용과 배상금 지급으로 나라의 재정이 어려워지고 농민에 대한 착취가 심화되었으며 일본의 경제침투로 농촌경제가 무너졌다.
1882년, 노병에 대한 차별로 임무군 반란이 일어났다.
1884년 금유두가 이끄는 급진적 계몽주의는 가신 쿠데타로 계몽주의 정책을 수립하려 했다.
가신 쿠데타는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났지만, 아쉽게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고푸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일으켜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 직할청을 설치하는 등의 개혁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조정개혁이 더디게 진행되고 일본의 침략과 내정간섭이 심화되자 농민군은 외세를 몰아낼 목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서울로 북진하게 된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은 신무기를 갖춘 관군과 일본군에 패하고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인간평등과 사회개혁을 주장한 동학은 당시 농민들의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에 대규모 세력을 모을 수 있었다.
가보개혁,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켜 고종이 친일개혁을 실현하겠다고 위협했다.
1894-1895년 청일전쟁의 승리 이후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이에 동요한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일본에 간섭하려 했고, 고종은 항일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위기감에 휩싸인 일본은 경복궁에 몰래 들어가 친러 명성황후를 시해함으로써 우비사변을 일으켰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조선의 항일감정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정책을 견지하는 선비들의 지도 아래 오티오 반란군이라 불리는 민족 반란군이 일어났다.
1896년 2월 고종은 경복궁에서 러시아 정부로 피신했는데 그곳을 아관파천이라고 불렀다.